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대재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7호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7 - 41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管子』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發朝鮮)과 중국의 관계는 기원전 7세기 무렵 춘추시대 齊와의 교류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관자』에 전하는 고조선 기록은 춘추시대의 사정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제와 발조선의 교류는 산동반도 북부 東萊와 요동반도 남단 老鐵山을 연결하는 해상의 廟島列島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춘추시대 산동반도 東萊지역은 齊國과 적대 관계에 있던 萊國의 영역이었다. 동래지역이 제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은 춘추시대 말기인 齊 景公 때(기원전 547~490년)이다. 따라서 기원전 7세기 춘추시대에 齊가 동래지역을 경유해 해상으로 발조선과 교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齊와 교류하였던 發朝鮮은 문피의 산지로 유명하였는데, 제와의 교통로를 고려할 때 遼東의 千山 산간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설에 따르면 『爾雅』의 斥山은 문피 산지가 아니라 문피가 중국에 수입되던 海口로 登州 文登縣 斥山(赤山)에 비정된다. 하지만 고대의 해로상 춘추전국시대 문등현 지역이 조선과의 교류에서 해구가 될 수 없다. 문등현 지역이 해구로 기능한 것은 황해중부횡단항로가 본격 이용되기 시작한 7세기 후반 이후이다. 『이아』의 斥山은 문피의 산지로 발조선 쪽의 지명이며, 그 위치는 산동지역과 해로로 연결되는 요동반도 지역에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관자』의 주요 내용은 齊의 稷下學宮이 흥성했던 宣王ㆍ?王 시기(기원전 319~284)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기원전 282~280년 燕이 朝鮮의 ‘서방’ 즉 요동지역의 發朝鮮(貊國)을 침공하여 齊와의 해상교류가 단절되기 직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산동반도 齊와 요동반도 發朝鮮이 해상 교류하였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이후~기원전 3세기 초일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발조선의 특산품인 文皮가 齊에 알려지면서 『管子』에 채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管子』에 나타난 發朝鮮의 文皮
3. 山東-遼東의 해상교통과 斥山
4. 山東의 정세와 齊-發朝鮮의 교류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910-002828942